다시 돌아온 수군통제사 이순신
임진왜란 발발 6년 후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거제도 앞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궤멸되자 선조는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오랜 옥살이로 심신이 쇄약해진 이순신장군을 다시 수군통제사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미 칠천량의 참패로 조선군의 사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 탈영병이 속출하는 조선군의 혼란속에 설상가상으로 아군의 모함에 마지막 거북선도 불타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단 열두 척의 판옥선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병사들 뿐이었습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하며 수도 한양까지 공략하려합니다. 해남을 근거지로 속속들이 모여든 일본군의 배는 이미 300척을 넘어서고 이순신타도의 특명을 받은 장수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의 선봉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이전 이순신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미치유키의 동생으로 이순신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한편 부하장수들은 이런 불리한 상황에 승산없는 싸움을 포기하고자 이순신장군을 찾아가는데 오히려 이순신 장군은 다시 돌아올 근거지를 모두 불태우고 필사즉생 필생즉사(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다)을 외치며 바다에서 죽기를 각오한 이순신 장군은 필사의 신념으로 마지막 결정의 장, 명량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어마어마한 병력에 이순신장군이 탄 대장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배들은 뒤로 물러나버리지만 개의치않고 협소한 지형과 가파른 물살을 이용한 작전으로 수십척의 공격을 홀로 견뎌냅니다. 그런 이순신 장군의 위용은 팔짱만 끼고 있던 조선의 다른 장수들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민심을 조금씩 바꾸어가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민중들의 참여와 아군의 지원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조선군은 다시 격전지로 향하고 드디어 출격하는 왜군의 선봉, 휘몰아치는 물결 속에 수십 명의 군사들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백병전(적에 육박해서 칼 ·창 ·총검 등으로 싸우는 전투)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수세에 몰렸지만 조선 수군의 용맹함으로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바꾼 명량해전, 갑자기 시작된 소용돌이로 왜군의 선봉대를 이겨낼 수 있었지만 자력으로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게 된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 대장선을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서 왜군을 물리치게 됩니다. 모두가 포기한 전쟁의 판도를 바꾼 하늘의 기적은 강력한 물살도 막강한 군사력도 아닌 두려움이 바뀌어 나타난 백배의 용기, 바로 민중의 힘이었습니다. 임금의 권력견제로 갖은 고초를 당해야만 했던 이순신 장군이 이끈 명량해전의 역사는 나라를 위하는 충심이 결국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역사적으로 입증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유재란 역사적 배경
당시 조선은 건국이래 200년간 전쟁이 없어 실전 경험을 가진 군사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이미 전국시대 통일전쟁을 하면서 전투경험이 무궁무진해 한양까지 단숨에 침공했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로마 교황청과 교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고, 세계적 은생산국가로 경제력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정명가도(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를 위해 군량보급과 군사징병을 요구합니다. 당시 조선은 인종과 명종을 거치면서 나라가 쇠락하고 왕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선조가 즉위를 한 상황으로 항상 정통성을 의심받아온 선조는 명으로부터 왕으로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기에 삼남지방에서 백성들이 추앙하는 이순신의 등장은 선조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기에 견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명은 후기에 접어들며 정치적 무기력과 관료주의가 팽배한 시기로 설상가상 최악의 통치자로 알려진 만력제가 통치하며 결국 점점 동북아 패권 국가에서 쇠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흥 강자 일본이 동북아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흥행이유
명량은 총 관객수 1,700만으로 역대 대한민국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개봉 후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1위는 단연코 이순신장군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승리로 이끈 전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승리를 이루어낸 전쟁은 명량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끈 판옥선 12척과 일본군의 333척의 함대와 싸워 승리한 역사적인 전투로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승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실감나게 연출한 해상 전투씬으로 여담으로 화면에서 보여지는 스펙타클한 영상에 비해 예산인 185억으로 적게 든 편이었다고 합니다. 이순신장군이 기지를 발휘해 작전을 펼치며 대장선이 수백척의 왜군의 함대에 맞서고 왜군들과의 몸싸움까지 우리 나라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투씬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짜임새있고 볼거리가 풍부했던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의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배역을 맡아도 잘 해내지만 이순신장군으로써의 무게감있는 포스와 목소리 그리고 카리스마까지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순신장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포커싱되는 작품이기에 캐릭터의 진정성이 중요한데 그 진정성을 잘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있기에 이순신장군의 영화가 많지만 명량이 유독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